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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싫어한 두 글자

낯선 병명 속에 숨은 익숙한 질환
2026. 10. 07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쓰는 한글의 생일인 셈이다. 평소에는 자음이 몇 개고 모음이 몇 개인지 생각할 일도 없지만, 이런 날이면 괜히 한글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은 모두 스물네 자다. 사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처음 만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아래아(ㆍ), 반치음(ㅿ), 옛이응(ㆁ)에 여린히읗(ㆆ)까지. 한글 창제 당시에는 모두 스물여덟 자로, 학교에서 한 번쯤 배웠지만 지금은 이름부터 낯선 네 글자가 더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이 네 글자는 사라졌지만, 세종대왕이 살아생전 그토록 떼어내고 싶어 했던 글자는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딱 두 글자, 바로 소갈(消渴)이다.『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며 “소갈증이 있어 열서너 해가 되었다”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몇 달도, 한두 해도 아니고, 이 말을 할 당시 이미 십수 년째였다.

소갈이라. 요즘에는 좀처럼 들어볼 일이 없는 병명인데, 세종대왕은 대체 어떤 병을 앓았던 걸까?

 

이름부터, 사라질 소(消)에 목마를 갈(渴)

‘갈’은 어렵지 않다. 말 그대로 목이 마르다는 뜻이다. 그 앞에 붙은 ‘소’는 조금 의아하다. 목마름이 사라진다는 뜻인가 싶겠지만, 여기서의 ‘소’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옛 의학에서는 몸속의 열이 음식물을 태우듯 소모시킨다는 의미로 풀이했다. 많이 마시고, 많이 먹고, 소변도 많이 보는데 정작 몸은 점점 야위는 것. 그래서 옛 의학에서는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 체중 감소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증을 소갈이라 불렀다. 동의보감에는 “소변이 달다”는 관찰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증상들, 어딘가 익숙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고, 잘 먹는데도 살이 빠진다? ‘당뇨병’의 대표적인 증상과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갈과 당뇨병 사이에 곧바로 등호를 그을 수는 없다. 소갈은 오늘날처럼 검사 결과로 구분한 하나의 질병이라기보단 비슷한 증상을 묶어 부르던 병증에 가까웠고, 당뇨병 외의 다른 질환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종대왕에게 남아 있는 기록이 소갈 하나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소갈 말고도 있었다

세종대왕은 젊은 시절부터 몸집이 크고 무거운 편이었다. 태종이 세종을 두고 “몸이 비중(肥重)하다”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오늘날 비만은 제2형 당뇨병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물론, 이것만으로 세종에게 당뇨병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금 더 눈에 띄는 건 눈과 다리다. 세종은 눈이 심하게 나빠져 고작 한 걸음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한쪽 다리의 통증 역시 십여 년 동안 이어졌다고 직접 말했다. 앞서 소갈을 열서너 해 앓았다고 밝힌 바로 그 기록에서 함께 언급한 증상들이다.

당뇨병은 단순히 혈당이 높아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높은 혈당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온몸의 혈관과 신경이 손상될 수 있는데, 눈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당뇨망막병증’은 시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고,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다리나 발에 저림과 통증, 감각 이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먼 과거의 기록만 가지고 지금의 진단명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600여 년 전 기록을 하나씩 모아놓으면 당뇨병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비만한 체격, 십수 년 넘게 앓았던 소갈, 여기에 오늘날 당뇨병의 합병증과 비슷한 눈과 다리의 질환까지. 그래서 세종대왕은 당뇨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자주 거론된다.

PLUS!

  • 세종대왕의 병을 두고는 다른 추측도 있다. 반복되는 허리와 다리의 통증에 눈 질환까지 앓았다는 기록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그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포도막염과 같은 눈 질환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조선시대에는 혈당을 재볼 수도, 당화혈색소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기록하는 것 말고는 병을 알아챌 방법도 많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건강검진 한 번이면 공복혈당을 확인할 수 있고, 당뇨병에 이르기 전부터 위험 신호를 발견할 수도 있다. 세종대왕을 지독히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두 글자, 소갈. 오늘날에는 굳이 이 두 글자가 오래 따라붙도록 내버려둘 이유는 없다. 그러니 올해 건강검진을 아직 받지 않았다면, 더 미루지 말고 내 혈당부터 한번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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